제목 메이 총리가 그려갈 세계 정치지도
날짜 2016-07-18 조회 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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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투표 이후 영국의 새로운 총리로 테리사 메이가 취임했다. 불확실성이 극대화된 위기 상황에서 최장수 내무장관의 기록을 세운 그녀의 깔끔한 업무능력과 강력한 리더십은 시장을 안심시켰고 파운드화는 반등했다. 왕실과 보수당이 선호하는 품격 있는 정치인 스펙에 딱 들어맞는 그녀는 구두 애호가이자 뛰어난 패션 감각의 소유자이기도 해서 취임 후 세계 언론과 패션계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는 중이다. 양성평등 내각을 구성하고 브렉시트 찬성파도 적극 포용하는 통합 정책으로 국내 정치를 빠르게 안정시키고 있는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협상 테이블에서 노련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 대항해 빠르고 정확한 판단력으로 영국에 유리한 패를 침착하게 던질 수 있는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명문대 출신의 보수적 원칙주의자, 노력파 여성 정치인이라는 점은 마거릿 대처 전 총리와 유사하지만 메이 총리의 인생 경로와 공간적 경험은 대처와 뚜렷하게 차별화된다. 올해 59세인 메이는 예로부터 유럽대륙과 교류가 활발했던 영국 남동부 서섹스지방 해안도시 이스트본이 고향이다(대처의 고향인 그랜섬은 외국과의 교류가 제한적인 중부 내륙에 위치한 중소도시로, 이번 브렉시트 투표에서도 EU 탈퇴파의 비율이 높은 지역에 속했다). 메이는 결혼·이혼에 대해 보수적인 가톨릭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대하고 자유로운 성공회 신부의 외동딸로 태어나 공립·사립학교를 두루 경험했다(감리교 설교자이자 잡화점 주인이었던 일중독자 아버지에게 정치수업을 받은 대처는 공립학교를 졸업한 모범생이었고, 사립학교 출신 금수저 옥스퍼드 동창생들을 끝까지 경멸했다). 옥스퍼드대에서 지리학을 전공한 메이는 잉글랜드와는 다른 웨일스·스코틀랜드·북아일랜드의 정체성 변화와 뿌리 깊은 갈등 구도를 이해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세계 정치·경제지도를 읽어내는 데 유리할 것이다(같은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대처는 포클랜드전쟁 당시 남편에게 독도법을 배울 정도로 지리적 상상력도 빈약했다). 대학 동창이자 절친이었던 전 파키스탄 총리 베나지르 부토가 자상한 성격의 평범한 집안 출신 남편을 소개해 주었다고 하니, 메이 총리는 젊은 시절부터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이나 공주병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부유한 연상의 이혼남과 전략적으로 결혼한 후 평생 돈 걱정 안 하고 우아하게 정치생활을 한 대처는 노골적인 인종차별주의자였다고 전해진다). 제조회사에 잠깐 다니고 변호사로 조금 활동한 것 외에는 치열한 직장생활 경험이 부족한 쌍둥이 엄마 대처와는 달리 메이는 정치 입문 전까지 공직과 민간 영역을 넘나들며 다양한 분야에 도전해 왔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은 공기관인 영란은행이었고, 이후 민간 금융회사로 이직해 국제관계 컨설턴트로 일했다. 1986년부터 런던 남서부 윔블던의 중산층 밀집지역인 머턴에서 행정경험을 쌓은 후 1994년 노동당 강세 지역이자 빈곤인구 비율이 높은 런던 동부의 바킹에서 선거를 치렀으니, 세계 도시 런던의 빛과 그림자를 함께 경험한 셈이다. 비록 낙선하기는 했지만 스코틀랜드와 가까운 영국 북부의 더럼(North West Durham) 선거구에서 출마한 경력도 이채롭다. '북부의 옥스브리지'로 불리는 명문 더럼대와 가까워 영국 엘리트층이 선호하는 곳이기는 하나 노동당이 우세한 낯선 험지에 용감하게 출마한 것이다. 1997년 영국 왕실의 윈저성이 있는 버크셔지역 메이든헤드에서 처음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이후 메이는 실력과 소신을 겸비한 정치인으로 보수당 내에서 확실한 입지를 다져왔다. 하지만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오랫동안 중심부의 달콤한 특권을 누려온 정치인이 노동자의 분노와 소외계층의 아픔에 깊게 공감할 수 있을까? 특히 막말과 기행을 일삼아온 보리스 존슨을 외무장관으로 기용한 것은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그녀가 '메이 자신의 길(May's Way)'을 개척할 수 있을까? 이는 영국과 곧 새로운 무역협상을 시작해야 할 한국 정부와 경제계가 전략과 대책을 마련할 때 참고해야 할 중요한 포인트다. [김이재 지리학자·경인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