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잠룡 손학규의 '가지 않은 길'
날짜 2016-07-18 조회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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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 위해 ‘安-孫 연대’가 현실적…더민주 복귀, 홀로서기 ‘난망’ 더민주 복귀시 ‘설 자리’ 없고 문재인 후보 들러리 될 수도 ‘홀로서기’ 동조자 적어 창당, 무소속 행보 쉽지 않을 듯 선손후안(先孫後安: 선손학규 후안철수) 대타협 이룰 리더십 발휘해야 ‘더민주 탈당 → 정계 복귀 → 독자 행보 → 안철수와 연대’ 수순 전망 더불어민주당 민주당 손학규 전 상임고문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손 전 고문의 정계 복귀가 임박했다는 추측이 무성하다.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손 전 고문이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길을 걸을 것이라는 견해가 많았다. DJ는 1992년 대선에서 패배한 직후 12월 19일에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DJ는 “이번 선거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지금까지 정치생활의 모든 평가를 역사에 맡겨놓은 채 정계를 떠나서 조용한 시민생활로 돌아 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1995년 6월 27일 지방선거에서 당시 야당인 민주당의 승리를 일궈내면서 화려하게 정계에 복귀했다. 뚜렷한 대권 후보를 내세우지 못했던 야당의 구원 투수로 재등판한 것이다. 그 이듬해 1997년 대선에서 DJ는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연대해서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그동안 ‘정계은퇴'와 '번복'은 대한민국 유력 대권 후보의 단골 메뉴였다. DJ만이 아니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도 정계은퇴와 번복의 경험이 있다. 이 전 총재는 2002년 대선에서 집권당 노무현 후보에게 패배한 후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1996년 2월에 ‘대쪽’ 이미지로 화려하게 정계에 입문했지만 97년 대선과 2002년 대선에서 아들 병역 면제 의혹이 불거지면서 DJ와 노무현 후보에게 각각 패배해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하지만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가 BBK 등 각종 의혹에 휩싸이자 은퇴를 번복하고 무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했지만 패배했다. 손학규 선택할 수 있는 세 가지 길 그렇다면 손 전 고문이 성공한 김대중의 길을 걸을지, 아니면 실패한 이회창의 길을 걸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손 전 고문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야권발(發) 정계개편의 불이 당겨질 수 있고, 향후 대선 가도에 파란이 일어 날 수도 있다. 손학규 전 고문은 2014년 7ㆍ31 재보궐 선거에서 패배한 후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전라남도 강진의 흙집에 ‘칩거’해 왔다. 여하튼 손 전 고문의 모습은 과거 유력 대권주자들의 행보와 상당히 유사하다. 손 전 고문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크게 3가지다. 첫째, 더민주로 복귀하는 것이다. 지난 2007년 대선 과정에서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을 탈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또 다시 더민주를 탈당해 다른 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지난 총선 이후 더민주의 정치 지형이 크게 바뀌었다. 친노 정당에서 친문 정당으로 탈바꿈됐다. 더구나, 당 대표 선출을 위한 8ㆍ27 전당대회에선 친문의 지지를 받는 추미애 의원이 당선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당내 유력 당권 후보이자 손 전 고문과 가까운 김부겸 의원이 당권 포기를 선언해 ‘추미애 당 대표- 문재인 대선 후보’라는 시나리오가 힘을 받고 있다. 상황이 이런 데 손 전 고문이 더민주에 복귀한다는 것은 그로 하여금 과거와 같이 대선 후보 들러리를 서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손 전 고문에겐 지난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 정동영, 2012년 대선에선 문재인 후보에게 완패했던 아픈 추억이 있다. 그런데, 대선 후보 경선 룰이 어떻게 만들어지느냐가 선거 결과에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문제는 이런 경선 룰을 만드는 것은 결국 당 대표의 몫이다. 그렇게 때문에 손 전 고문의 입장에서 보면 추미애 대표로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더민주로의 복귀는 쉽지 않다. 지난 2012년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민주통합당 대표는 문재인 대표와 가까운 한명숙 전 총리였다. 당시에 민주통합당은 2012년 7월 18일에 결선투표제 도입과 예비경선 실시, 모바일투표를 포함한 전국 순회 투개표 등을 내용으로 하는 당내 경선규칙을 확정했다. 하지만 손 전 고문은 모든 지역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완패했고 문 후보는 결선 투표 없이 9월 16일 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됐다. 손 전 고문이 예상밖의 참패를 당한 이면에는 친노가 강세인 모바일 투표가 크게 작용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2012년 대선후보경선에서 준비기획단장이었던 추미애 최고위원이 이번에는 당 대표로 유력하다. 손 전 고문이 정계를 은퇴한 후 더민주의 상황이 바뀐 건 없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친노 패권 정당을 청산하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경강파 친노는 사라지고 막강한 친문 정당으로 바꿔었다. 둘째, 국민의당으로 가는 길이다. 안철수ㆍ천정배 공동 대표가 지난 6월 29일 총선 당시 홍보비 리베이트 의혹 파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전격 사퇴했다. 손 전 고문은 현재까지 정계 복귀에 대한 뚜렷한 입장 표명을 피해 왔지만, 국민의당 지도부가 무너지고 야권이 격변기에 접어든 지금이야말로 복귀하기에 적기라 할 수 있다. 호남 중심으로 지지 기반을 확보할 경우 ‘손학규 대망론’이 점화될 수도 있다. 하지만 손 전 고문이 국민의당으로 갈 경우,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무엇보다 국민의당의 상징적 인물인 안 전 대표와의 관계 설정이다. 두 사람 모두 내년 대선을 바라보고 있는데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어느 한쪽이 양보해야 하는데 그리 쉽지 않다. 그런데, ‘선손후안(先孫後安: 선손학규 후안철수)의 대타협이 이뤄지면 가능하다. 안 전 대표는 지난 2월 2일 창당대회 대표 수락 연설에서 “온몸을 던져 정치부패, 가짜 정치 등 우리 정치를 지배해 온 낡은 관행과 문화를 완전하게 퇴출시키고 정치의 새로운 장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의 최측근인 박선숙 의원이 이번 파문에 연루되어 안 전 대표의 이런 다짐은 공허한 메아리가 됐다. 안철수 자신의 목숨과도 같았던 자신의 정치적 슬로건인 ‘새 정치’가 크게 훼손된 상황에서 고도의 정치적 승부수를 던질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당선돼 2002년 대선에서 대통령이 되기까지 14년 걸렸다. 이명박 대통령은 1992년 민자당 비례대표로 정치에 입문한지 15년이 지난 2007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조차 1998년 재ㆍ보궐 선거에 당선돼 2012년에 대통령으로 선출될 때 까지 14년 걸렸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냉정하게 평가하면 안철수 대표는 2013년 4월 24일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된 정치 초년생이다. 정치와 골프는 참 유사한 점이 많다. 특히, 정직한 운동이고 핸디만큼 나온다는 것이 비슷하다. 백돌이가 어쩌다 ‘홀인원’(hole in one)은 할 수 있어도 싱글을 할 수는 없다. 백돌이가 시합에서 이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실력이 뛰어난 사람과 편을 먹고 포섬(four-some) 이나 포볼(four-ball) 게임을 하는 것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실력이 달리면 연대를 하는 것이다. 안 전 대표의 최대 우군은 손 전 고문이 될 수 있다. 안 전 대표는 과거에 ‘무엇인가 도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을 세 가지 들었다. ‘내가 정말로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일인지’, ‘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열정을 갖고 할 수 있는 일인지’, 실제로 내가 일을 잘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일인지’라고 말했다. 만약, 안 전 대표가 “꼭 이번에 내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린다면 ‘손-안 연대’는 급물살을 탈 수 있다. 셋째, 스스로 광야에 홀로 서는 것이다. DJ가 95년 정계 복귀하면서 ‘새정치국민회의’를 만든 것처럼 창당을 할 수도 있고, 2007년 이회창처럼 무소속 행보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창당은 쉽지 않다. 95년 DJ가 창당할 때 민주당 현역 의원 65명이 탈당해 합류했다. 향후 대권 가도가 지나치게 불투명한데 손 전 고문이 창당의 기치를 들고 나온다고 더민주와 국민의당에서 튀어 나올 의원들은 그리 많지 않다. 따라서 손 전 고문은 어느 정당에도 귀속되지 않고 당분간은 독자 행보의 길을 걸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는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라는 시에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노래했다. 정치인은 누구나 자신이 걸어온 길보다는 걷지 않았던 길에 대한 미련이 있다. 손 전 고문의 입장에서 보면 시에 나오는 길은 바로 정치 인생의 길이다. 인간은 동시에 두 길을 갈 수 없으므로, 바로 여기에서 인간적인 고뇌와 한계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손 전 고문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전망하는 것과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는 지는 별개의 문제다. 그러나 손 전 고문이 대망을 이루려면 두 번째 길을 가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특유의 리더십을 발휘해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손-안 연대’를 만들어야 한다. 손 전 고문은 향후 ‘더민주 탈당 → 정계 복귀 → 독자 행보 → 안철수(국민의 당)와의 연대‘라는 수순을 밟을지 모른다. 孫, 천천히 그러나 옳은 길 가야 손 전 고문은 장점도 많지만 단점도 많은 정치인이다. 가장 큰 장점은 학생 운동, 대학교수, 국회의원, 보건복지부 장관, 경기 도지사. 당 대표 등 화려한 정치ㆍ행정 경험과 경륜을 갖춘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다. 또한, 권력 의지가 누구보다 강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회창 전 총재는 대한민국 대선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을 갖고 있다. 대선에서 3번 연속 패배했을 뿐만 아니라 상고 출신 후보들에게 모두 패배했다. DJ는 목포상고, 노무현은 부산상고, 이명박은 동지상고 출신이다. 한편, 이 전 총재는 경기고 → 서울 법대 → 26세 사시 합격(30명 선출)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그러나 한국 대선에선 학벌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손 전 고문의 장점이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손 전 고문의 단점은 정치 타이밍을 잘 못 맞추고 지나치게 좌고우면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최측근을 배제하고 ‘나 홀로 결심’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 스킨십이 강한 것 같은데 실제로는 약하다는 평가가 있다. 경기고등학교 출신이어서 똑똑은 한데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가 부족하다는 부정적 평가도 있다. 손 전 고문은 지난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별안간 한나라당을 탈당했는데 자신의 최측근이었던 김성식 의원과 박종희 전 의원도 사전에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 따라서, 손 전 고문은 ‘가지 않은 길’을 걷더라도 누구나 납득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명분과 힘을 통해 새로운 정치를 해야 한다. 과거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책 한권으로 많은 국민을 흥분시키고 기대를 일궈냈던 것처럼. 정치인 자신이 무엇을 하려는지 분명히 이야기하는 것은 정치하는 사람의 윤리다. 철학은 없고 공학에만 빠지면 결코 좋은 정치를 할 수 없다. ‘천천히 그러나 옳은 길’을 가는 것이 아름답고 강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치권에서는 “강한 것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긴 것이 강한 것이다”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한다. 잘못된 것이다. 과정은 상관없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도 있기 때문이다. 그 반대가 돼야 한다. 이기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이 더 아름다워야 한다. 현재로선 손 전 고문이 얼마나 아름답고 의미 있는 길을 갈지 지켜볼 뿐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